클루지(개리 마커스) 책소개
자청 작가의 <역행자> 책에서 인생을 바꾼 책으로 소개된 책입니다. 그 영향으로 절판되었던 책인데 재발간되어 제가 이렇게 구매할 수 있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클루지의 뜻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을 말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클루지는 인간의 마음에 중점을 둡니다. 즉, 과거에 그때그때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급조된 해결책들이 점차 쌓여서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기제가 되었다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
이런 클루지들이 쌓여 우리의 행동을 이끌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고, 조금이나마 이런 클루지들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합니다.
진화심리학적 시각으로 인간의 심리와 행동을 설명하며 진화심리학에 생소하신 분들에게는 혁신적인 요소가 많습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 관련 책을 몇 권이나마 보신 분들에게는 다소 익숙한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을 맹신하지 말라
우리의 기억은 맥락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식당에 있을 때 지난번 다녀왔던 식당들이 더 잘 떠오르며, 운전대를 잡으면 별 무리 없이 와이퍼 조작을 해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조각조각 뇌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을 정리하는 적합한 체계는 존재하지 않기에 그때그때 상황에서 맥락적으로 기억이 꺼내어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상황에 따라 기억이 영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은 그때의 상황에 따라 왜곡되고, 인출된 기억은 사실에서 많이 왜곡되어 버린 것일 수도 있음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잘 속는다
흔히 우리의 신념이라고 하면 자신이 오롯이 정한 삶의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혀 무관한 주위 환경요인들에도 쉽게 속아 신념과 판단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즉, 우리의 신념은 감정, 기분, 욕구, 목표, 사리사욕 등에 오염되어 있습니다.
위협적인 것은 멀리하고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은 가까이하는 진화의 역사는 우리가 친숙한 것에 더욱 안정감을 느끼고 이것을 버릴 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런 진화의 방향은 인간을 좀 더 완전하게 만들어주지 못하게 되었죠. 그때그때 상황만 해결하면 되었을 미봉책들이 모여 우리의 마음을 쌓아 올렸기에, 우리 인간은 스스로 믿고 싶어 하는 것을 믿도록 자신을 속일 수 있는 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항상 주위 환경과 자신의 경험들로 편향될 수밖에 없다는 것만 인식하여도, 조금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늘 하던 결정의 반대편에 서보는 것도 때로는 우리의 오염된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피곤할 때는 중요한 선택을 하지 마라
우리의 뇌는 두 가지 체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도 진화의 역사에서 적층 된 구조인데요. 초기인류에서부터 존재하였던 생존, 감정, 본능을 중시하는 선조체계 위에 이성, 논리, 사고로 대변되는 이성적인 숙고체계가 얹혀있는 형태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트레스를 받는 등 위협을 느끼게 되면 생존을 도모하기 위해 선조체계만을 사용하고 숙고체계의 통로를 닫아버리게 됩니다. 즉, 무엇보다 현명한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에 선조체계와 숙고체계가 긴밀히 협조하지 못하고 비이성적인 해결책을 쏟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피로한 상황,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는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시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피곤하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먼저 휴식하는 것이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한 대안이 될 것입니다.
행복은 그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도구다
인간은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든 거기에 익숙해지는 탁월한 순응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인간의 행복과 관련지어 보면 우리가 초기에 느꼈던 황홀감은 적응으로 곧 사라질 것임을 말해주기도 합니다.
이 순응의 힘이 왜 돈이 인간에게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지를 말해줍니다. 수많은 재화는 엄청난 초기 만족을 가져다주지만 그런 부는 곧 익숙해져 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곧 행복감을 느낄 수 없게 돼버리는 것이죠.
여기에서 행복의 근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행복은 우리를 살아남아 번식하도록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요. 익숙한 것들에 쌓여 가만히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행복이라는 것을 좇도록, 인간을 끊임없이 움직이도록 만드는 데 행복이라는 수단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쾌락과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달려가지만 쥐고 나면 곧 익숙해져 무감각해 버린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면 누가 그걸 가지려고 노력할까요? 삶이 무력해지지 않을까요? 행복은 인간을 달려가게, 살아가게 하는 도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걸 알면서도 행복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기도 합니다. 다만, 곧 무의미해질 수많은 행복들을 좇기 위해 자신을 끝없이 소진시키는 행위는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고장 나기 쉽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멍청한 짓을 할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이 잦죠. 하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클루지들을 이해한다면 이는 어쩔 수 없는 결과임을 인식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인지적 오류들을 가지고 있고 사소한 오작동을 달고 살며 때로는 심각한 고장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중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담배, 술, 게임, 쇼핑 등 수많은 유혹거리에 중독되고는 합니다. 객관적으로 떨어져서 생각하면 이런 행위들이 유해함을 인식할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은 항상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주는 단기 이익이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보이거나, 이를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장기 이익이 너무 하찮아 보이거나, 뇌가 이 둘의 비율 제대로 계산하지 못할 때 중독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흔히 '오늘 한잔 하면 이 스트레스를 풀고 잘 잘 수 있을 거야. 술을 오랫동안 마셔도 건강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라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끝내며
인간의 마음은 이렇게 불안정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클루지 덩어리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냥 '인간은 원래 불안정하니까'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될까요? 저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늘 내가 옳고 내 결정이 완벽했다고 마음속으로 하는 말들은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거짓말, 자기 세뇌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조금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알고 있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지만 아예 모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기억, 신념, 선택, 행동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작은 인식만으로도 조금 더 큰 세상을 보고 거기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봅니다.
[우리 마음속의 클루지들에 관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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