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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꼬막손 칼럼

남자는 아들을 직접 길러봐야한다, 아빠의 육아가 필요한 이유

나는 결혼이 늦은 편이다. 서른일곱에 결혼을 해서 마흔에 첫 아이를 낳았다. 간절히 아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식을 가지게 된다면 딸을 가지고 싶었다. 왠지 나와 닮은 남자아이를 대면한다는 것이 꺼려졌고 무언가 불편한 감정을 일으켰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결혼을 했다면 응당 자녀를 가져야 하고 특히 남자는 아들을 제 손으로 길러보라고 꼭 추천하고 싶다. 남자아이를 낳고 아내와 공동육아를 하는 2년 간의 기간이 지금껏 살아왔던 40년의 인생보다 나에게 더 큰 변화를 주었다. 성별 따질 것 없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 자체가 숭고하며 많은 가르침을 주는 것이지만 나는 동성의 자식을 낳아 길러 보는 것이 개인의 성장에 더 큰 더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육아아빠의 육아
아빠의 육아가 필요한 이유

남자는 사내아이를, 여자는 딸아이를 길러보는 경험이 자신의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될까? 직접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며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이 돌보는 시간이 길수록 느끼는 바가 많다. 나에게도 분명 이런 시간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것들은 어떤 것일까?

 

 

 

마흔에 낳은 사내아이는 정체성을 뒤흔들었다

아이를 낳고 한 달간 아내가 친정에 가있던 기간을 제외하고는 줄곧 아내와 함께 육아를 했다. 초반에는 두 명이서 아이를 케어하면 조금 더 편하고 내 취미생활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이도 엄마아빠가 계속 자기의 옆에 있다는 걸 아는지 두 명분의 일거리를 만들어 내었다.

 

쉴 여유는 없었고 아이가 이렇게나 많은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커갈수록 나는 점점 우울해졌다. 술에 대한 의존성은 더욱 커져 갔으며 삶에 대한 회의감과 무기력감으로 점점 황폐해졌다.
 
이 시기에 왜 나는 지독한 우울증에 빠졌던 것일까? 육아란 그저 밥 먹이고 옷 입히고 기저귀 갈아주고 잠깐잠깐 놀아 주면 될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나에게는 당연한 결과였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하나의 개성 있는 인격체와 대면한다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었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고집이 생긴다. 그게 개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유독 생각조차 나지 않았던 어릴 적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건 왜일까?

 

이렇게 아이와 대면하며 나의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항상 안아달라고 자신을 보살펴달라고, 내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 아이를 보면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보았나 보다. 그렇게 요구하고 자신을 봐달라고 했던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던, 그래서 자립이라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던 내 모습을 보았던 것이었다.

 

 

 

아들이 나에게 준 자유

그걸 깨닫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왜 나의 자식에게 질투감을 느꼈었는지, 요구하는 아이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냈었는지 깨달았다. 그저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 아이라는 것을 깨닫자, 내가 받지 못했던 것에 대한 원망이 내 속에 남아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아들의 얼굴과 나의 어릴 적 모습이 하나로 합쳐졌다. 내 아이를 잘 돌보는 것이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어린 날의 상흔들을 치료하는 길이라 여겨졌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개성 있는 아이로 기르는 행위가 나의 상처까지 치유하는 길이라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떼쓰고 어지럽히고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에서 하나의 개성 있는 인격체로 성장하기 위해 알아가고 배워가는 중인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늘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나에게 이리도 큰 영향을 주고 있었음을 몰랐다. 항상 남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들어 있던 삶. 남의 목소리를 나의 생각이라 착각하고 살아왔던 삶은 나 같은 남자아이의 모습을 보며 균열이 생겨버렸다. 그 균열이 알코올중독, 삶에 대한 회의감, 무기력증, 우울증 등으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리라. 이제 그 균열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과 함께 균열을 메워나가고 있다.

 

아빠의 육아아빠의 육아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


이제 마흔전의 나와는 꽤나 달라졌다. 끊임없이 나를 판단하던 내면의 목소리들, 타인이 심어놓은 그 목소리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직장에서의 평판, 좋은 집, 비싼 차, 넘치는 통장 잔고, 변하지 않는 외모 등 평생을 따라다니며 내 존재의 격을 높여줄 거라 생각했던 가치들은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알았다. 혹여 이루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평생 더 원하고 욕망하는 사이클을 벗어나지 못하리란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잊고 있었던 순수한 어린 날의 내 모습, 누구의 생각과 지시로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그대로인 나를 아들에게서 보았다. 아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나를 성장시키고 본래의 나로 치유해 주는 그런 자유로움을 주었다. 그 시간들의 소중함은 이제 무엇으로도 바꾸지 못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함께 커나가는 경험은 지금껏 경험했던 그 어떤 자극과 쾌락이 주지 못하는 충만감을 전해주었다.

 

 

 

인간관계의 허실을 알게 되다

자신의 기준이 아닌 타인과 사회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게 되면, 어느새 많은 인맥이 성공한 삶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러했다. 평판, 모임, 친구 등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폭넓은 인간관계는 내가 잘하는 분야가 아니었다. 나 자신도 모른 체 사회의 기준대로 나를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로 몰아넣고 있었다. 세상이 달라져도 변하지 않을 남자들의 찐한 우정, 그에 대한 환상을 버리자 쓸데없이 나를 소진시켰던 인간관계의 덧없음이 보였다.

 

사람은 그리 오래 살지 못한다. 젊은 날은 더더욱 짧았다. 수많은 친구들, 직장 동료들이 나를 대변해주진 않는다. 이제는 자신에 대한 정의는 나만이 내릴 수 있을 뿐이며, 어떤 가치 있는 것을 남길 것인가가 나를 말해준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인생에서 가장 생산성이 좋은 20~30대를 인간관계에 얽매여 산다면 그만큼 이후의 삶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기가 힘들어진다.

 

육아를 하면 그런 인간관계가 정리된다. 바쁜 현실에 시간이 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정 가치 있는 일을 경험하면 가치 없는 관계들이 가려지게 된다. 또한 그런 시간들로 내 소중한 시간을 쓰기에는 앞으로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실수와 다툼들로 허물어질 피상적인 인간관계의 성으로 들어가는 대신, 평생 함께 있어 줄 가족과의 시간이 나에는 중요함을 알려주었다. 물론 모든 인간관계를 정리했다는 말은 아니다. 오래 좋은 관계를 이어 나갈 사람들로만 내 주위를 채워나가는 것, 친구의 수가 중요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다.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남자들에게

열심히 살고는 있지만 어딘가 내 인생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사람. 가정에서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끊임없이 할 일, 취미, 인간관계를 갈구하며 외부에서 그 안정감을 찾고자 하는 사람. 부모와의 관계가 껄끄럽고 결혼생활도 만족스럽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아마도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에서 조금 더 나아지기 위한 해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하지만 이렇게 자신이 지금껏 살아왔던 삶에 대해 의문을 느끼지 못한 채 평생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그만큼 자신을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고 그 의문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삶이 바쁘거나 둔감한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인식한 사람들은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인생의 행복이라는 화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된다.

 

행복을 찾기 위한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혹시나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문제를 선택해야 한다면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길 바란다. 지금 만족하지 못하는 현실이 결국 나에게서 시작된 것임을 안다면 육아만큼 좋음 치유수단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동성의 아이를 낳아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일은 더욱 숭고한 일이며 많은 깨달음을 준다는 것을......

 

남자들아!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이유식을 먹여보아라. 그곳에 숨어있는 행복을 찾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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