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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꼬막손 칼럼

평생 양보하고 친절하다가 인생이 아무거나가 된다

 

마흔의 사춘기를 격하게 보내며 조금은 단단해졌다고, 조금은 커졌다고 생각했건만 아직 이리도 흔들린다. 나는 여전히 남에게서 내 존재를 보고 있다.


아직도 나의 친절이 남을 기쁘게 해 줄 것이라는 망상으로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푼다.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마음이 상한다. 상대방에게는 과한 참견으로 자존감에 상처까지 줄 수 있는 그런 행동들을 하고서는 말이다.

 

사람은 응당 남에게 베풀고 친절해야 한다는 머릿속의 목소리가 나를 조종하는 것인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에게조차 그런 목소리가 나를 이끈다.


나는 왜 내 수고를 들이면서까지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을 일에 목을 매는 것일까?

 

나는 왜 내 친절이 가치가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일까?

 

그리고 나는 왜 상대방에게서 보답이 되돌아오지 않으면 상처를 받을까?



늘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나를 이리도 남의 시선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었기에 그토록 남의 시선에 얽매였던 것이겠지.

 

그런 내가 남에게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친절, 양보가 제일 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 존재를 감추고 좋은 사람처럼 베풀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베풀었다고 생각했는데 기대했던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고 때로는 불같이 화가 나는 것이리라.



이제 그만 남의 시선에서 내려오자고, 내 눈높이로 세상을 살아가자고 다짐했건만 오늘 또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버렸다. 부모와 사회가 심어놓은 좋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나의 뇌리에 이리도 깊게 박혀있구나!

이제껏 40년 넘게 나를 짓누르던 양보와 친절의 껍데기는 나에게 행복을 주지 못했다. 남의 반응에 내 행복을 구걸하다니 행복의 주권조차 저당 잡힌 것이겠지.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아무거나가 된다.

 

하지만 인생은 짧다. 80년을 산다면 벌써 반을 지나왔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가속도가 붙는 시간이라는 녀석은 앞으로 남은 인생을 더 빨리 소진시킬 것이다.

 

이렇게 인생이 짧을 줄 알았다면, 그리고 그걸 이제 깨달았다면 앞으로 남은 인생은 조금 더 당당해도 되지 않을까? 늘 배려하고 양보한다는 착각으로 원하지도 않을 친절을 베푼다면 그곳에 나의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몫은 내가 챙겨야 한다. 점심 메뉴조차 남에게 맞춰주며 아무거나 괜찮다고 해버리면 진짜 인생이 아무거나가 된다.


그리고 조금은 더 내 기분대로 살아도 된다. 남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면 조금 더 나답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짧은 인생에서 조금 더 행복을 맛볼 수 있다. 당장 내가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자신의 평판이 아니라 내 기분이 조금 더 좋아질 뿐일 것을...



본래의 나대로, 나의 가치관대로 산다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이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까?

 

짧지만 소중한 내 인생이 '아무거나'가 되지 않으려면,

 

남의 반응에 휘둘리지 말자.

원하지도 않은 친절을 베풀고 인정받기를 바라지 말자.

그리고 조금 더 당당하게 요구하고 내 기분대로 살자.

 

누구의 것도 아닌 소중한 '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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