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듯한 직장, 자가주택에 남부럽지 않아 보이는 가정을 꾸리고 있는 40대 가장. 겉으로 보기에는 모범적이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껏 앞만 보고 달려왔건만 이루어놓은 것들은 그다지 행복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여태껏 나를 다그치며 달려가게 만들던 머릿속의 목소리는 내 것이 아니었을까요? 누군가 시키는 대로 산 것처럼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들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다음날이면 부딪히게 되는 현실에 묻혀, 그저 별것 아니거니 그렇게 넘기자고 자신을 다잡습니다.
그런 시도도 한계에 달했을까요? 이제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버립니다. 모든 의욕은 사라지고 무력감과 우울감이 나를 집어삼켜버립니다. 인생의 반을 살아왔건만 무언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기만 합니다.
제게 찾아온 마흔은 불혹이 아니었습니다. 너무나도 주변환경에 혹하고 갈대처럼 흔들리기만 하더군요. 이를 이르는 말이 사십춘기, 중년의 위기라고들 합니다.
오늘은 이런 중년의 위기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중년의 위기가 오는 이유
1. 중년이 되면 위인 부모와 아래인 자식 사이에 끼인 세대가 된다
우리는 유년기부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부모에게 받은 영향으로 성격의 특징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부모의 영향은 자신의 가치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가치관이 부모에게서 온 것인지도 모른 체 살아가게 됩니다.
이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게 되면 그 관계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늘 보살핌과 가르침을 받아오던 입장에서 그것을 자식에게 내려주는 위치에 서게 되면 정작 자신이 가졌던 가치관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죠.
내가 자식에게 무의식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내가 어릴 적 부모에게 듣던 그 말임을 깨닫는 순간 혼란에 빠집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는 부모의 노쇠함도 같이 찾아오게 됩니다. 늘 보살핌을 주었던 부모가 이제는 보살핌을 받아야 할 위치에 서게 된 것이죠.
부모와 자식사이에 끼여 양쪽에게 보살핌을 주어야 하는 위치게 서게 된 순간, 모든 결정을 자신이 내려야만 하는 위치에 서면, 그간 자신이 내렸다고 생각한 결정들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정작 그 결정은 나만의 생각으로 내린 것이 아니었구나 라구요.
2. 지금껏 목표로 삼았던 삶의 기준이 모호해집니다.
우리는 부모와 사회가 제시하는 틀 안에 맞춘 삶을 살아갑니다. 부모와 학교의 가르침을 지나 각종 단체생활을 경험하고 나면 어느새 우리 고유의 특질들은 사라지고 평준화되게 됩니다.
우리 사회가 지극히 평준화를 이룬 사람을 선호하는 것일까요? 그저 남들이 이야기하는, 미디어가 이야기하는 성공한 삶을 위해 달려갑니다. 청년기에는 오직 그것만이 자신의 목표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것이 진리라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행위의 결과를 판단하려면 먼저 자신이 그것을 경험해 봐야 판단할 자격이 생기게 됩니다. 20대 중후반까지는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준비로 이를 판단할 겨를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당장 필요한 기술을 배우면서 자신이 이룬 업적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표가 어디서 온 것인지 점검할 생각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흔 정도가 되면, 지금껏 우리가 목표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회에서 성공한 인생이라고 말했던 것이, 겪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느낄 경험치가 쌓이게 됩니다. 그간 쌓아왔던 사회생활의 경험들이 말합니다. "너는 누가 말한 목표를 네 것이라고 그렇게 좇고 있었니?"라고요.
3. 본인의 질병, 가까운 이의 죽음 등의 충격을 겪습니다.
마흔 정도가 되면 혈기왕성하던 신체와 외모가 한풀 꺾이면서 인간의 유한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또한 부모 등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보게 되는 일은 더한 충격을 가져다줍니다.
격한 슬픔과 더불어 인생이 이렇게 유한한 것이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간의 인생에서 해온 일이 앞으로 남은 인생에서 계속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냐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 우리는 중년의 방황기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십춘기는 어떤 증상으로 찾아오는가
항상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을 채찍질하는 목소리가 있던가요? 그 목소리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아무도 지시한 적은 없지만 부모의 기대아래, 사회의 영향력아래 짓눌린 아이들은 그들의 기대를 자신의 목표인양 마음속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진정한 자신의 본모습은 부모와 사회의 기대로 지워지게 됩니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란 아이. 그런 부모의 기대를 이루려고, 그것을 자신의 기쁨인양 달려가는 아이일수록 진정한 내면아이와 만들어진 성격에는 극심한 불균형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 불균형이 쌓이고 쌓이게 되는 순간, 소멸직전에 이른 내면아이가 살기 위해 내지르는 소리를 느끼게 되면 중년의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내면의 자아와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성격 사이의 불균형이 클수록 증상은 심하게 찾아옵니다. 그만큼 유년기부터 자신의 진정한 개성에 반하여 강요된 삶을 살아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사십춘기는 부모와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인격으로부터 자신의 개성을 찾아 진정한 인격으로 태어나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런 과정의 시작은 당연히 혼란스럽습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인생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요.
흔히 사십춘기는 우울증, 무력감, 알코올 중독, 약물남용, 외도, 강박증, 가정불화, 도박 등의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가볍게는 기분부전장애에서 심하게는 자기 파괴적 행동, 폭력적인 행동에 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특별한 계기가 없거나 신호를 무시하고 지금까지의 가치관을 깊게 고수하는 사람은 이런 중년의 위기를 겪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기도 합니다. 물론 느끼지 못한다면 진정한 개성을 찾는 제2의 인생은 찾아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십춘기를 겪는 것은 지금껏 억압해 왔던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고뇌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요?
중년의 위기를 이겨내는 방법
자의든 타의든 자신이 중년의 위기에 들어섰다면 우선 반가워해야 합니다. 이를 겪지 않고 사회가 만들어준 인격을 자신의 것인 양 그렇게 한평생을 사는 사람도 적지 않으니까요.
그 이후에는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지?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소명은 무엇인지? 나의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지?'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그간 남의 목표를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여 살아오며 타인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바랐다면, 그 투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의 안녕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부족했던 것을 다른 누군가가 채워주기를 바랐다면, 이제는 그 역할은 자신이 해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역할을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항상 자신의 행동을 검열하는 목소리의 근원을 찾아내세요.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인지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타인과 사회가 자신을 가두는 소리였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
그런 후에 깊은 사색으로 자신의 열정을 따라가 보세요. 유년시절 그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진정으로 빠져들고 행복했던 것이 있지 않나요? 그 열정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잊었던 열정을 만난다면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간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옭아매던 온갖 제약에서 벗어나 한없이 자유로워짐을 느낄 것입니다. 제2의 인생이 그렇게 찾아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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