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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꼬막손 칼럼

술 권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

20대에 즐겨하던 RPG게임 아이템 중에 '망각의 눈물'이라는 것이 있었다. 구하가기 어려운 아이템이었는데 지금까지 배웠던 스킬을 다 없애주고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스킬 포인트를 원래대로 돌려주는 아이템이었다. 캐릭터를 잘못 키워서 레벨은 높은데 PK에서 힘을 못 쓸 경우가 스킬을 잘못 배워서 그런 경우가 많았다.

 

그걸 원래대로 돌려주는 아이템.

 

 

술 권하는 사회
술 권하는 사회에 대한 생각

인간의 삶에도 그런 아이템이 있다면... 잘못된 길로 들어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는 인생을 삭제하고 다시 되돌려 준다면? 그야말로 마법 같은 일이며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될 아이템일 것이다. 그만큼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는 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 본 적 있는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인생이기에 우리는 후회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만의 가치관을 만들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실패 또한 그런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의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술 권하는 사회

인간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실패를 마주 보아야 한다. 그 실체를 바닥까지 구석구석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한 실수를 깨닫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의 무지함, 어리석음, 짧은 생각들을 왜곡하지 않은 채 그대로 지켜보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었는지 그 후회의 고통을 뼛속까지 느낄 수 있다.

 

그 고통은 나의 무지함에 대한 통탄일 수도, 말도 못 할 부끄러움 일수도, 실수를 통해 진리를 배운 것에서 오는 깨달음의 전율 일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의 실수와 실패를 아무런 방어막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동영상을 돌려 보듯이 그 장면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자신의 말투, 표정, 행동 하나하나까지 수십 번 되돌려보아야 한다.

 

그래야 깨달을 수 있다. 자의로 꾸미지 않은 실수의 원본을 그래로 머릿속에 넣어두고, 무엇인가를 느낄 때까지 자신과 마주한다면 깨달을 수 있다.

 

 

술 권하는 사회

그런 사람들은 실수와 실패로부터 배우고 성장한다. 그런 실수와 실패가 약이 되어 무럭무럭 자란다. 거침없이 시작하고 도전하며 실수하고 실패한다. 인생 초반기에 그런 사람의 모습이 보잘것없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실수와 실패를 자아성찰을 통해 성공의 밑거름으로 만들어버린다.

 

복리의 마법처럼 실수와 실패가 쌓일수록 무섭게 성장하고, 나중에는 무슨 일을 해도 실패가 드문 거인으로 성장한다. 이것이 자아성찰의 효과가 아닐까?

 

물론, 자아성찰로 자기 비하, 자기혐오에 이르는 사람은 제외했다.

 


 

알코올 중독자는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빠진 사람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무언가 헛헛하다는 느낌.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게 가슴속에 있다는 걸 무의식으로 느낀다. 이걸 느끼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알코올을 접하는 순간 자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술 권하는 사회

내 안에 항상 있던 텅 빈 무엇이 채워진 느낌이다. 술을 마시면 난 더 용감해지고 솔직해지며 과감하게 내 생각을 이야기한다. 뒷일을 걱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그렇게 술이 진짜 나를 꺼내준다.

 

 

술 권하는 사회

사회의 틀 속에 갇혀 숨어 지내던 진짜 내가 풀려난다. 현실의 나는 부옇게 된 시선으로 진짜 나의 행동을 그저 보고만 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내가 하지 못할 행동들을 하는 '술 마신 나'를 보며 짜릿함을 느낀다.

 

내가 평소 하지 못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는 저 인간이 너무 자유롭게 보인다. 그래 내 속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게 저 인간이다. 이 허전함의 구멍이 점점 커져 내가 소멸하기 전에 이렇게나마 저 녀석을 풀어놓고 마음껏 헤집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속에 뚫린 구멍이 블랙홀이 되어 나를 집어삼켜버릴 것이다.

 

그저... 그런 느낌에 저 인간이 하는 행동을 지켜본다. 그렇게 용인하고 방관한다... 그리고... 즐긴다.

 


 

술 권하는 사회

오늘은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나보다 입사도 많이 늦은 후배가 내가 하는 말마다 건방지게 말대답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후배로서 당연하게 해야 할 일을 내가 상기시켜 주었을 뿐인데 건방지게 또 말대답을 늘어놓았다.

 

몹시 기분이 나빠서 그 자리에서 쌍욕이라도 해야 기분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대답을 하는 후배 앞에서 얼굴만 붉힌 체 속으로만 쌍욕을 해댔다. 

 

이것이 내가 시작한 싸움의 결과였다.

 

'내 목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다들 후배가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며 대드는 걸 봤으니 그 아이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야.'

 

순간 나에게 이렇게 위로를 한다. 하지만 진정한 위로는 되지 않았다.

 

'진정한 위로가 필요해!'

 

그렇게 오늘도 근사한 핑계로 퇴근길에 술을 사서 들어온다. 만취해서 술을 다시 사러 나가는 일이 없도록 종류별로 한 아름 사서 들어간다.

 


 

근사하게 생긴 아이돌이 나오는 TV를 틀어놓고 회사의 그 후배와 비교를 하며 술잔을 든다.

 

 

술 권하는 사회

머릿속에서 욕을 내뱉으며 첫 잔을 삼킨다. 목으로 꿀렁 넘어가는 입체감과 목젖을 통해 다시 넘어오는 알코올의 기체향, 찌르르 전기가 흐르는 아랫배. '역시 첫 잔은 빈속이지.'를 느끼며 다시 다음 잔을 들이켠다.

 

그 잔이 점점 많아질수록  TV속의 연예인이 내 현실의 동료가 되고, 내 현실의 동료는 루저가 되어 존재가 사라진다. 이제 완전 나의 세상이다. 내가 꿈꾸던 세상 안에서 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마신다.

 

이제는 잠깐 후배가 생각이 나는 순간 과감하게 육성으로 욕을 한다. "XX끼"라고. 그리고 금세 잊어버리고 술과 TV 속 진짜 내 인생에 빠져 버린다.

 

그렇게 난 술을 마시고 진짜 현실을 느꼈다. 비었던 뭔가가 채워지면서 완성체인 내가 되어 진짜 현실을 누볐다.

 

하지만 그럴수록 난 진짜의 세상과 멀어져 갔다......

 


 

낮에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지 못한 채, TV 속 누군가와는 비교도 못하게 못난 후배의 말을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방어막을 두른다. 선배의 꼰대 마인드이며 일 잘하는 후배에 대한 질투였다는 사실을 술이라는 방어막을 쳐서 잊어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진짜 현실을 맞는다.

 

이건...... 내가 게임에서 하던 '망각의 눈물'이라는 아이템이 아닐까?

 

 

술 권하는 사회

그렇다. 술은 진실을 잊게 만든다. 회사에서 힘들었거나, 애인과 헤어졌거나, 가족 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흔히 술 한잔하자고 한다. 복잡한 마음을 털어내는 데는 술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온갖 잡다한 상념들은 술 한 잔을 들이켜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풍선처럼 가득 찼던 생각의 공기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가 버린다.

 

'그래 그러 마시는 거야. 인생 다 그런 거지, 버텨내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마시자. 오늘은 마시고 죽고 잊어버리자. 내일부터 또 열심히 살면 되는 거야.'

 

이런 생각으로 술에 만취하고는 술이 깬 다음날 숙취까지 사라졌을 때 기분을 알지 않는가? 그 더러운 기분을 말이다.

 

현실은 그대로 남아있는데 내 정신만 잠시 딴 세계로 도피했을 뿐이다. 그 시간 잠시 망각의 눈물을 마시고 잊었을 뿐이다. 그 효과는 알코올이 분해되기 전까지만 유지되는 것이고... 효과가 다했다면 그처럼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또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현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받아들일 용기가 없거나, 어떻게 진실을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면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잠시라도 잊는 게 그 순간에는 도움이 된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현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자신이 더 늦게 받아들일수록 그 현실의 상처는 점점 더 크게 불어나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곪아있을 것이다.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저 답답한 마음을 잊고 싶어서 술을 마신다면 충치로 아파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사탕을 주는 것과 같다. 술은 내 코앞에 다가와 있는 현실에 잠시 가림막만 쳐줄 뿐이다. 그렇게 술은 현실을 가려버린다.

 

 

술 권하는 사회

술은 내 실수와 실패를 돌아보지 못하게 하고 더 크게 키워버리는 막강한 도구다.

 

술은 내 실수와 실패를 망각하게 만들어 영영 실패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망각의 눈물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기분이 울적하고 나쁠 때는 술을 마시지 않았으면 한다. 울적하고 나쁜 감정은 현실이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보내는 신호이이다. 술을 마시고 나쁜 기분을 해소하려 하지 말고 그 기분을 그대로 느껴라.

 

'무엇 때문에? 내가 왜 이럴까?'라고 나에게 물으며 답을 찾아내라. 해답을 찾아내었을 때 분위기 좋은 술집에서 남 욕을 하며 마시는 술맛보다 월등한 기쁨을 느낄 것이다.

 

해답을 찾아내었다면 현실에서 적용시켜라. 그렇게 나쁜 기분이 해소되고 잘못되었던 현실이 개선되었을 때 기분 좋은 축배를 들자.


 

"애인과 헤어졌다며?"

"오늘 팀장한테 엄청 깨졌다며?"

"술 한잔할까? 이럴 때는 한잔 먹고 잊는 게 최고지!"

 

 

술 권하는 사회

이런 말을 하는 친구가 되지 말고, 이런 말을 하는 친구를 인도하자. 생각과 사색이 필요한 시기에 망각의 눈물을 권하는 것은 나를 그 자리에 주저앉히는 행동임을 알게 해 주자.

 

사회에서 배운 대로, 한국 문화에서 배운 대로 내가 무의식 중에라도 그렇게 하고 있다면, 친구를 더 힘들게 만드는 행동을 하고 있다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술 권하는 사회

내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친구에게 술을 권하지 말자. 현실에 가림막을 치려 하지 말고 현실을 더 자세히 보고 깨우칠 수 있도록 속속들이 비춰주는 거울이 되자. 친구의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가감 없이 비춰 줄 수 있는 거울 같은 사람이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술 권하는 사회. 그렇게 사람을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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