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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꼬막손 칼럼

자존감, 그리고 실패라는 두려움

난 보고서를 작성할 때면 몇 번씩 확인을 한다. 오타는 없는지, 좌우 여백은 적당한지, 띄어쓰기는 잘 되어 있는지, 문맥에 맞지 않는 말은 없는지 등등

 

 

 

자존감, 그리고 실패라는 두려움

집청소를 할 때도 한 번에 다 끝내야 한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려놓고 거실, 주방, 안방, 작은방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까지 끝낸 후 샤워를 하면서 화장실 청소까지 한다. 나에게 집청소란 집 전체를 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시도하지조차 않는다. 어느 순간 나의 생활태도를 잘 표현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듣기에는 좋을 수 있다. 무슨 일이든 완벽히 한다는 말인데, 다르게 해석하면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조금 살을 붙이면 어떤 일을 제대로 하려면 준비가 많이 필요한데 그것이 하기 싫어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제대로 하지 않을 거면 시작하지 않는다란 말은 결국 현실에 안주하고 도전정신을 잃은 고개 숙인 남자의 핑계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시작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얼마의 확률로 성공을 하는 것이 아닌 실패하지 않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나는 성공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성공할 확률이 낮은 일은 걸러낸 것이다. 반대로 실패하지 않을 일만 선택한 것이었다.

 

보고서의 형식, 집청소 같은 일에는 실패가 없다. 내용보다는 형식에 집착한 보고서, 사용하지도 않는 방까지도 청소하려는 집착이 평소 내가 도전하지 못했던 삶에서 느끼는 자괴감이 투사된 것이 아닐까?

 

그저 그런 인간관계, 그저 그런 직장생활, 그저 그렇다고 느끼는 내 삶에서 '조금이라도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실패하지 않을 일에서의 완벽함 추구'란 공식을 만들어 내었나 보다.

 


 

세상에서 모든 일을 성공만 할 수 있을까?

 

무슨 일이든 성공만 하려고 하니 실패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일, 내가 할 노력에 비해 가시적인 성과가 직접적으로 오지 않는 일은 늘 나의 선택지에서 제외되었다.

 

나는 왜...... 왜 이럴까?

 

 

 

도전하고 실패하면서 배우는 것이 사람일진대... 이렇게 실패를 무서워하는 겁쟁이가 되어 낮디 낮은 내 자존감을 보호하기에만 급급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어떤 큰 실패가 있었기에 그것이 트라우마의 시작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흔히들 이야기하는 낮은 자존감, 그것이나마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였던 것일까?

 


 

큰 실패, 살아왔던 삶을 180도 바꿀만한 큰 실패가 있었는지 한번 천천히 돌아봤다.

 

큰 잘못은 많이 했다. 법적으로 문제 되는 행동도 있었고, 누구에게 심한 상처를 준 적도 많다.

 

하지만 크게 생각나는 실패란 해본 적이 없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큰 도전을 해본 적이 없었다..... 썩을!!!

 

이러고 보니 어릴 적부터 실패하지 않을 일만 골라서 해왔나 보다. 어느 정도 노력만 들이면 성과가 나오는 일들. 사업 같은 건 전혀 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매달 따박따박 월급 받아먹고사는 회사원이면 족했다.

 

흔히 남자들 대부분 환장하는 게임과 도박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많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너무도 실패할 가능성이 큰일이 아닌가?

 


 

이렇게 나는 내가 예상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시작하지 않았다. 그래서 실패하지 않았다.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란 그 선택의 시기까지 내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그 안에 있던 것들만 내 선택지에 들어간 것이다.

 

와... 나는 내가 아는 세상에서만 살려고 했구나. 지독한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

 

애초에 실패하지 않을 일만 선택해 놓고 일의 성패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연기했다. 그런 모습에 내가 진취적이고 도전적이라는 자아도취를 한 것은 역설에 가깝다.

 

다만 내가 아는 세상이 부서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었고, 이런 나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 실패를 두려워하게 되었던 것이겠지.

 


 

이런 나의 성향이 가정교육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러하다. 무의식 중에 부모의 말을 자신의 생각인양 착각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다.

 

난 위로 누나 3명이 있는 막내아들이다. 나름 귀하게 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맞이의 압박감을 느끼면서 자란 것도 아니고, 항상 맞이를 시기하며 관심을 갈구하는 둘째도 아니었다.

 

부모님이 어린 나이에 낳아서 길렀던 자식도 아니었고, 딸 셋을 기르면서 육아경험이 쌓이고 외부의 인생경험도 더 쌓인 나이에 나를 낳았다.

 

물론 좋은 경험만 쌓였을 때 나를 낳은 건 아니었을 것이다. 여럿 자식을 길러 보면서 부모를 힘들게 했던 것들.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나에게는 심어지지 않았으면 하셨을 것이다.

 


 

"부모말 듣지 않고 한 번의 호기심으로 시작해 결국 실패하는 것, 서로가 실망하는 것을 보는 일은 너는 하지 말거라. 누나들처럼 제멋대로 하지 말고 우리말대로 하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엄했고 고압적이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 옆에서 못한 말을 나에게 하소연하시던 어머니.

 

 

 

부모님의 가치관이 나에게 전해져 어느새 새로운 일, 도전적인 일은 실패와 가깝다는 공식이 나의 뇌리에 박혀버린 듯하다.

 

그렇게 난 실패가 두려워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선택해 완벽하게 해내는 위장술을 익혔다. 그렇게 낮디 낮은 내 자존감의 고갈을 막고 있었다.

 


 

내가 듣지 못한 말, 그래서 가슴속에서 빠져 버린 그것.

 

"그래 마음껏 해보렴. 그래 네 뜻대로 해보렴. 우린 너를 믿으니까."

 

대신 나에게 들어차 있는 것. 내 아이가 크면 뱉을 수도 있는 모진 말.

 

"한번 하다가 그만둘 것 같으면 시작조차 하지 말거라. 옆집의 그렇게 똑똑한 애도 실패하는 것 못 봤니? 엄마아빠 애 먹이지 말고 우리가 하자는 대로 하면 잘 해결될 거야."

 

 


 

나는 인정과 격려가 필요했었구나.

 

날 것 그대로의 나의 마음을 그저 누군가 알아주고 지지받고 싶었구나.

 

'실패해도 괜찮다고, 실패해도 많은 것을 배워서 성장하는 멋진 아들일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었구나.

 


 

늘 그게 비어있었다.

 

"그냥 너로서 괜찮다. 네가 무슨 일을 해도 우린 너를 믿는다."

 

꼭꼭 감추고 눌러왔껀만, 마흔이 넘어 터져 나온 그것.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지 못한 경험이 이리도 내 자존감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큰 구멍이 되어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